한국인으로 여기저기 살아보기(2): 스위스편

스위스 제네바는 유엔 등 수많은 국제기구가 위치해 있고, 그곳에서 일하는 전세계에서 온 외교관, 국제기구공무원, 그들의 배우자 및 자녀들 외에도, 그들을 위해 일하는 가정부, 청소부, 그리고 무급인턴들이 더불어 살고 있다.

내가 맨처음 제네바를 방문한 것은 2002년쯤 한국의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할때였다. 이당시 얘기를 좀 해야겠다. 당시 인권정책국 법제개선담당관실의 계약직공무원이었는데, 한국정부가 가입한 혹은 미가입한 국제인권협약의 이행준수를 검토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때, 제네바에 출장을 자주 갔었고, 호주 인권위원회와도 직원교류프로그램으로 한달간 시드니에 살기도 했었다. 20대에 짧지만 이런저런 국제경험을 했던 것이 장기적 커리어개발을 결정할때 매우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던것 같다. 인권위 이후 국회에서 비서관으로 아주 잠시 일을 했었는데 3개월만에 그만 둔 주요한 이유중의 하나도, 매우 유일한 국제경험의 기회가 주어졌는데 모시는 의원이 못가게 하기에, 매우 고민을 하다가 결국 의원실을 나왔다. 당시엔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살면서 가장 잘한 결정중의 하나인거 같다.

지금 20대 대학을 갓 졸업하거나 석박사과정에 있는 분들에게 자주하는 말이, 20대는 한직장에 있더라도 이것저것 많은 것을 해볼수 있는 곳, 아니면 아예 한곳에 오래있을 생각을 말라는 거다. 내가 20대에 직장을 옮기거나 그만둘때, 교수님이나 선배들이 해주었던 충고가 대부분 참고 견디라, 직장을 자주 옮기는 건 좋지 않다, 뭐 이런 것들이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이게 다 헛되고 자기들 좋으라는 말이었던 거다. 지금의 20대에게 내가 해주고픈 말은, 참지 말라, 당신에게 해가될거 같으면 나갈곳을 당장 찾아라, 당신의 능력을 더 인정해줄 곳을 계속 찾아라, 그대신 더 열심히 해라, 당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참아야 하는 것은 나를 해롭게 하는 직장이 아니라, 당신 스스로가 옳은지 아닌지를 증명하는 과정이다.

다시 제네바 얘기로 돌아와서, 실제 제네바에 살게된 것은 2009년 1-3월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 무급인턴으로였다.  이때가 내 박사과정3년찬데, 난 이미 2년차에 논문을 다 썼지만 학교에서 3년을 채워야 졸업을 시켜준다 해서, 마지막 해에는 논문을 일단 제출해놓고, 이것저것을 일을 하면서 만2천파운드(한화 2천5백만원 정도?) 했던 학비를 내고 학교는 다니지도 않는 이상한 생활을 했었다. 그대신 학교에서 주는 장학금과 약혼자가 준 포켓머니(용돈)로 3개월간 제네바에서 유엔인턴을 했다. 정말 가난했지만 행복한 시절이었다.

유엔 무급인턴이 가난한건 얼마전 제네바서 캠핑생활을 하던 인턴의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다. 내 경험도 그와 일반 다르지 않은데, 하숙집(?)과 유엔인권고등판무관실을 도시락을 싸들고 왔다갔다 하며 3개월을 보냈다. 점심이나 저녁을 밖에서 사먹으려면 너무 비싸서, 대부분의 소셜(일 외의 각종모임?)엔 가지 못하거나, 가지 않았다. 이런 모임에 가지 않으면 많은 기회를 놓치는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도 않다. 그리고 성격이 상냥한척 하지만 사실 매우 까칠하고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해서, 돈이 많았더라도 북적대고 시끄러운 곳엔 그냥 가지 않았을거 같다.

다행이 매우 좋은 수퍼바이져를 만나서, 일을 많이 배웠고, 수많은 회의에도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수퍼바이저는 독일여성이었는데, 무급인턴에 대한 원칙이 매우 분명한 최고의 상사였다. 무급인턴은 ‘일’을 하는게 아니라 ‘배움’이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을 주면서도 1) 하고싶지 않으면 안해도 된다는 것을 수차례 강조했고, 2) 몇개의 일을 동시에 주면서, 가장 해보고 싶은 일을 고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3) 그녀의 다른 동료들이 나를 ‘부려먹으려’ 할땐, 나를 보호해주기까지 했다. 내인생에 눈물이 나도록 고맙고 존경하는 사람이 몇 있는데, 그중 한사람이 내 인턴시절 수퍼바이져, Katja Peschke이다. 좋은 상사를 만나는 것이 운이기도 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본인의 선택이기도 하다.

제네바에 살면서, 출장으로 와서 보지 못했던 다양한 국적의 유엔직원들의 일면을 관찰했던 것도 중요한 경험이었다. 멋지고 착하게 보이기만 했던 유엔에 대한 환상이 깨지기도 했지만, 조금더 현실적이 되었다고 할까. 연봉, 승진, 유급휴가 이런 게 중요하다고 최초로 실감하게 해준 매우 고마운 무급인턴생활을 잘마무리했다. 인턴을 마치자마자, 유엔에서 컨설턴트를 하며 런던과 제네바를 자주 오가게 되기까지, 무급인턴은 ‘일’을 하지 않으면서 좋은 ‘투자’를 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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